
일시: 2010년 5월 8일 토요일 (7시 40분 상영후)
장소: 광화문 씨네큐브
Q) 대낮에 술을 마시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제가 낮에 술을 자주 마시는 편이에요. 영화 속의 인물은 결국 제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반복되는 상황이나 설정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Q) 최근작을 보면 로맨틱 코미디같이 밝고 귀여운 느낌이 강한데, 변화의 이유는?
A) 언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 저도 변화하고 있겠죠. 말보다는 제가 만든 결과물이 그 이유를 더 잘 설명해 줄 것 같습니다.
Q) 이번 작품에는 특수분장을 한 인물이 두 명이나 등장하는데, 찍으면서 어색하지 않으셨나요?
A) 어색하기보다는 재미있었어요. 거지 캐릭터는 <밤과 낮>이란 작품에서 한 번 나온 적이 있는데, 그 때 배우분은 10일간 씻지 않고 출연하셨어요. 이번 영화에서 거지역을 맡으신 분은 통영의 연극배우 출신이신데, 역시 3-4일간 씻지 않으셨다고 해요. 이순신 장군은 통영과 관련있는 인물이라는 데에서 착안한 인물이었고, 김영호씨가 연기하게 됐죠. 극 중에서 이순신 장군이 입은 의상은 한산대첩위원회라는 곳에서 빌린 싸구려 갑옷입니다.
Q) 감독님의 최근작을 보면 카메라의 움직임이 점점 화려해지고 있는데, 그 이유가 있다면?
A) 언어로 설명하긴 힘든 문제예요. 화가가 어느 날 마대자루을 사용해 그림을 그렸는데 마음에 들어 계속 쓰게 된 경우랄까. 처음엔 정적인 장면만 찍다가, <극장전>에서부터 팬을 썼고 최근엔 줌(인앤아웃)까지 사용하고 있죠. 카메라의 무브먼트가 형성하는 리듬, 거기에서 나오는 어떤 코멘트가 재미있어요.
Q) 영화를 보면 '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주인공 중 한 명이 시인이 나오기도 하구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시'를 통해 캐릭터의 대비 같은 걸 그려보고 싶었어요. 극중에서 이순신 장군이 '나뭇잎'을 갖고 이게 뭐냐고 물어보잖아요. 우리 주변의 사물은 대부분 기능적으로 소화되는데, 이름을 지워보면 그것과 관련된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어요. 이순신 장군의 말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억압적 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김강우씨가 맡은 시인 캐릭터는 사회적/운명적인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하는 말은 억압적 틀에 대한 일종의 반항같은 거죠.
Q) (유준상씨께) 술마시는 장면은 어떻게 연기하셨나요?
A) 오랜만에 마이크를 잡네요. 괜찮습니다. 익숙합니다. 홍감독님과 GV할 때는 늘상 그래요. (좌중 웃음) 술은 흥이 날 만큼만 마셨어요. 홍감독님 영화는 대본이 당일날 나오는데, 몇 시간 내에 대사를 모두 암기해야 해요. 게다가 촬영 중에는 굉장히 디테일한 주문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만취한 상태에서는 제대로 찍을 수가 없습니다. 홍감독님 영화를 찍을 때는... 한 15테이크 찍을 때까지 내가 뭘하고 있나 싶다, 25테이크 정도 가면 빨리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30테이크 정도 찍으면 모든 걸 초월해요. 마치 원래 여기에 있었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게 되죠. 촬영할 때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서 온몸이 마비되는 기분이 들때쯤 하루가 끝나있더라구요. 아! 그리고 아까 낮술에 대해 물어보신 분이 있는데, 저희 영화는 제작비가 부족해서 밤 장면을 찍을 수가 없었어요.
Q) (유준상씨께) 본인이 생각하는 베스트 장면과 워스트 장면이 있다면? 다시 찍고 싶은 장면은?
A) 홍감독님 영화는 그날그날 감독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냐에 따라 바뀌거든요. 근데 이상하게도 찍고나면 그 모든게 미리 정해져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촬영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그랬어요. 처음에 감독님에게 호출이 와서 사무실에 갔는데, 갑자기 영화에 출연할 배우들이라고 소개를 해주시더라구요.(좌중웃음) 그 때부터 영화에 참여하게 됐어요. 베스트 장면이라고 하면, 한밤중에 문소리씨 집앞에서 찍은 씬이 생각나네요. 당시에 현장에서 저희들끼리 '이건 강풍기 10대로도 못 만드는 바람이다' 라는 얘길 했었어요. 그만큼 바람이 심하게 불었는데, 신기하게도 현장녹음이 잘 됐어요. 그리고 바닷가에서 연주와 비바람을 맞는 장면 같은 데서는 우산이 뒤집어지는 테이크가 있어서 배우들끼리 재밌어 했는데, 최종 편집본에는 조용히 걷는 장면이 들어갔어요. 영화 속에 나오는 강아지는 감독님이 아침에 발견하신 떠돌이 개였는데, 이 개가 너무 사나워서 도저히 찍을 수가 없었어요. 근데 마침 근처의 한 아주머니가 강아지를 안고 계시길래 그 개를 대신 출연시켰어요. 아주머니 말씀으로는 동네에서 제일 착한 강아지라고 하시더라구요. 영화 후반부에 계단에서 넘어지는 씬은 사실 NG컷이에요. 실수로 제가 넘어진거죠. 근데 감독님이 갑자기 "허리 아프니깐 침을 맞아야 하지 않을까." 하시더니, 그 장면을 넣으시더라구요......(두번째 질문 답변) 다시 찍고 싶은 장면은 없습니다.
Q) 김상경씨와 유준상씨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흑백사진으로 처리한 이유는? 최근작에서 관객의 주의를 끄는 엑스트라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A) 직감적 선택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어요. 저는 어떤 의도를 갖고 생각하면 너무 무거워지는 경향이 있어요. 그냥 찍기 전까지 축적되어 있던 생각이 자연스럽게 인물의 행동이나 대사로 나오는 것 같아요. 두 인물의 대화는 '좋은 것만 보자'라는 말을 하며 술을 마시는 장면을 먼저 생각했고, 찍다보니 과거(흑백, 스틸사진)와 현재(칼라, 동영상)를 확실히 나누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두번째 질문답변)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나온 수영장 커플은 우연히 발견한 사람들이었어요. 그 장면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출연을 요청했는데 응해주셔서 찍게 됐죠.
Q) 예전 영화에 비해 가볍고 웃긴 장면이 많은데, 감독님은 본인 작품을 보면서 웃으시나요?
A) 아무래도 만든 사람인지라 맘껏 웃지는 못하고, 주위 사람이 웃으면 그 때 좀 따라 웃습니다.(좌중웃음) 사실 저는 영화의 특정장면이 주는 효과에 대해선 무심한 편이에요. 반면 관객들의 반응은 무척 궁금해하죠. 영화가 상영되면 관경 한 명 한 명에게 이 작품이 어떻게 다가가는지 알고 싶고, 그게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게 되는 이유가 되는 것 같아요.
Q) 극중에서 문소리씨가 이별을 고하면서 김강우씨를 업어주겠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성옥이는 관계를 청산할 때 우위에 서 있고 싶어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상황을 만들어봤어요.
Q) 출연한 배우들에 대한 주관적 의견을 들려주신다면.....
A) 캐스팅 과정에 대해 말씀드리면..... 일단 TV나 인터넷에서 본 배우들을 중심으로 리스트를 짠 다음 연락을 합니다. 그리고 만나서 커피나 술을 한 잔 하면,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이 영화 속 이야기와 함께 화학작용을 일으키죠. 촬영이 시작되면 배우의 일상적인 모습을 시나리오 쓸 때 반영하곤 해요.
Q) 차기작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A) 지난 겨울에 소규모의 스텝과 함께 <옥희의 영화>라는 작품을 찍었습니다.
Q) (유준상씨께) 실제로 순대를 싫어하시나요?
A) 순대는 사실 감독님이 싫어하시는 음식이에요. 저는 순대를 좋아하는데 신기하게도 실제로 촬영을 할 때는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더라구요. 전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참 많은 걸 깨달았어요. 스스로에 대한 반성도 많이 했구요. 감독님께 그런 말씀을 드리니, "나도 많은 걸 반성했다."라고 하시더라구요. 이제 저도 40대에 접어들었는데, 앞으로 감독님과 계속 영화를 찍는다면 50대 혹은 60대에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합니다. 아까 관객분이 말씀하신대로 감독님이 계속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Q) 감독님이 생각하는 '좋은 것'이란?
A) 인생에서 좋은 것은 주로 '작은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 같아요. 반면 '큰 것'은 대부분 마음 속에 있는 허구적인 틀 같구요. 주변을 보면 이미 주어진 것이 적지 않은데, 어렸을 땐 그런 걸 보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아프게 하죠. '눈 앞에 있는 것이 전부'라는 걸 깨닫기가 어려워요.
Q)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메모하시는 편인가요?
A) 예전에는 불안감 때문에 매일 메모를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메모의 필요성이 점점 줄어들더라구요. 굳이 적어두지 않아도 마음 속 어디엔가 축적되고 있음을 알게 된 이후부터요. 요즘에도 메모지를 갖고 다니긴 하는데 자주 활용하지는 않아요.
Q) 영화 이외의 다른 문화적 관심사를 말씀해주신다면?
A) 평상시 책, 영화, 미술을 가까이 하는 편입니다. 책은 대부분 20대때 취향이 정해졌고, 최근에는 세잔의 그림이 마음에 들어요. 보고 있으면 만족감이 느껴지죠. 그림에서 나타나는 추상과 구상의 경계가 제 기질과 맞아요.
Q) 영화 속에서 '어둡고 우울한 것은 나쁘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의미는?
A) 사람이 살면서 어둡고 우울한 건 피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마음 먹기에 따라 아름답게 느낄 수도 있겠죠. 그 대사는 좋은 것이나 밝은 것을 보려 하는 태도를 격려하는 의미가 있어요.
(마무리 멘트) 유준상씨: 이 영화를 기술 시사회를 포함해서 두 번 봤는데 관객 분들과 볼 때가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근데 영화를 보면 꼭 공허한 웃음 뒤의 슬픔(?) 같은 것들이 있거든요. 그 이유를 잘 몰랐었는데, 허문영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흑백 사진 속의 두 사람은 모두 죽은 사람 같다." 사실 지인들과 옛날 이야기를 할 때 대부분의 내용은 어렵고 힘든 시절에 관한 거잖아요. 다소 미화시켜 표현되는 경향이 있긴 한데, 다시 못 올 순간이기 때문이겠죠. 만약에 50대나 60대에 이 영화를 본다면 눈물이 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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